세브란스를 방문한 분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3개의 전신 동상 이분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문창모 박사는 70년을 한결같이 인술을 펼치며 결핵 퇴치사업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지극한 헌신으로 크리스마스 실 운동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해방된 지 4년이 지난 1949년, 세브란스병...
세브란스의학교 2회 졸업생 이태준의 가슴에는 조국의 독립이라는 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몽골 환자들을 최선을 다해 진료하면서도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세브란스의학교 2회 졸업생 사진. 이태준은 사...
자신의 연구가 훗날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젊은 의학자가 있었다. 그의 확신은 지금 우리가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세브란스 문화유산 - 복강경 수술의 선구자 윤인배 박사> 편 대공개!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그는 세브란스연합의학교 교수로 초빙받으며 한국과 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3.1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취재해 이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
에비슨의 초청을 받아 조선 땅을 밟은 스코필드는 세브란스의전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가르쳤다. 1919년 그는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송환 조치된 후, 전 세계에 삼일운동의 진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nb...
알렌은 조선 정부에 서양식 병원건설안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병원 책임자를 맡겠지만 조선 정부로부터 급여는 받지 않을 것이며, 미국인 의사 한 사람을 초청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에 고종은 병원으로 쓸 가옥을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재동 제중원에서 1년 넘게 진료활동을 전개한 알렌은 좀더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병원을 옮기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제중원은 처음에는 구리개 일대, 그 다음에는 남대문 밖 도동으로 이전을 거듭하면서 규모가 확대되었고, 점차 독자적인 선교...
민영익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면서 조선에는 알렌 신화가 탄생했다. 그러나 알렌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제중원 건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후에 외교관으로 변신해 한미외교를 주도했다. &...
미국공사관의 무급 의사로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던 알렌은 갑신정변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한말 조선의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이 사건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 도입을 이끈 사건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정국 개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