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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실로 결핵 치료 기금 마련한 한국의 슈바이처 문창모

관리자 12-07 914

문창모 박사는 70년을 한결같이 인술을 펼치며 결핵 퇴치사업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지극한 헌신으로 크리스마스 실 운동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해방된 지 4년이 지난 1949, 세브란스병원 원장실에서 중년의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저를 택하심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저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 겁니까?”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한국에는 아직도 결핵이 창궐하고 있다. 치료비가 없어 죽어가는 결핵 환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중단했던 크리스마스 실을 다시 발행해라.” 그 중년 남성은 당시 세브란스병원 원장을 맡고 있던 문창모였다. 그는 1932년 한국에서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되었을 때 발행위원 7인 중 한 사람이었다.

1931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문창모는 이듬해 해주 구세병원에 취직했다. 해주 구세병원은 1909년 미국 감리회 선교사인 노튼이 설립한 병원으로, 문창모가 일할 당시에는 셔우드 홀이 운영하고 있었다. 셔우드 홀은 1928년 한국 최초의 결핵 전문 병원인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한 인물이다. 문창모는 셔우드 홀과의 만남을 통해 결핵 퇴치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1932년에 셔우드 홀은 결핵 치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일단 발행은 했지만, 문제는 크리스마스 실을 선전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1932년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던 때였다. 또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한국 농민들은 가난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크리스마스 실이 과연 팔릴 수 있을지 사람들은 의구심이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실을 오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환자는 가슴에 실을 붙였는데도 기침이 낫지 않는다는 불만의 편지를 홀에게 보냈다. 또 실을 요양원 입원권으로 생각한 어떤 환자는 “당신의 요양원에 무료 입원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실 입원권을 좀 보내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실 발행에 앞장선 문창모 박사

 

평양 학생들을 일깨운 희망의 실 전도사

문창모를 비롯한 발행위원들은 실을 팔기 위해 지역을 나누어 홍보에 나섰다. 문창모는 평양을 맡았다. 그는 광성고보, 정의여고보 등 감리회 계통의 중등학교를 찾았다. 문창모는 전교생이 모인 아침기도회 시간에 폐결핵의 실상과 실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장로회 계통의 학교는 안면이 있는 한경직 목사에게 부탁을 했다. 미국에서 유학했던 한경직 목사는 결핵의 심각성과 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문창모는 한경직 목사의 소개로 숭실전문, 숭실고보, 숭실여고보 등을 찾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문창모는 다른 지역을 찾은 어떤 위원보다 많은 실을 판매했다.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창모는 “홀 박사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첫해 크리스마스 실 발행은 성공적이었다. 실제 경비를 제하고도 170달러가 이익으로 남았다. 수익금은 결핵 퇴치사업에 참여하는 선교병원에 보내졌다. 크리스마스 실 발행의 성공은 단지 많은 경제적 이익을 낸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실을 발행하는 진정한 목적은 교육과 계몽에 있었다. 사람들은 실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결핵의 위험성과 예방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실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전했고, 결핵 예방에 대한 내용은 점점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산 속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 실은 결핵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생명의 파수꾼이 되었다.

 

문창모는 1932년 한국에서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되었을 때 발행위원 7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평양의 학교들을 방문하여 폐결핵의 실상과 실의 의미를 설명하자 학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해주 결핵요양원에서 크리스마스 실을 보내는 장면

 

 

결핵 없는 세상을 꿈꾸며 실 운동 재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문창모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1949년 크리스마스 실을 다시 발행했다. 그후 실은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지만, 문창모는 사실 실이 계속 발행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문창모는 회고록에서 “결핵을 예방하고 퇴치시켜서 결핵이란 질병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실마저 쓸 데 없는 것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라고 말했다.

2011년 대한결핵협회는 어린이들이 “뽀통령”이라 부르는 ‘뽀로로와 친구들’을 소재로 한 실을 발행했다. 2011 10월 질병관리본부는 결핵 환자 수가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던 결핵 사망자 수까지 8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발표했다. 문창모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 과제는 후배들의 몫으로 남았다.

 

 

 

 

 

profile 문창모


 

1907평안북도 선천군 출생

1924 배재고보 편입

19266.10 만세운동 참여

1931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

1932 해주 구세병원 의사

1947 마산 결핵요양소 소장

1949 세브란스병원 원장

1959 원주 연합기독병원 원장

1964 원주 문이비인후과의원 개원

1995 대한민국 건국포장 수상

2002 원주기독병원에서 별세

 

 

박윤재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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