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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질환으로 사선 넘은 임대성 씨 & 심장내과 최동훈 교수

관리자 03-07 903

얼마나 의지했으면 서울로 이사를 왔겠어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임대성 씨는 곧장 앰뷸런스에 몸을 실은 채 서울로 향했다

대동맥박리라는 위급한 상황을 넘긴 후 임 씨는 심장병 명의 최동훈 교수와 만났다. 이미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 임 씨는 대동맥박리 수술 후 아예 원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세브란스병원 근처에 살면서 모든 건강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000 3 31일 저녁, 임대성 씨는 등과 가슴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당시 원주에 살았던 임 씨 내외는 집 근처 병원에 갔다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고, 자정 무렵 앰뷸런스로 세브란스 응급실에 들어왔다. 진단명은 대동맥박리. 세 겹으로 이루어진 대동맥이 세로로 찢어져 빨리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그때 임 씨는 최동훈 교수의 신속하고 뛰어난 시술 덕분에 겨우 사선을 넘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오던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죠. 지금도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싫어요. 그전에 심근경색이 왔었는데, 이번엔 대동맥박리라고 해서 정말 놀랐죠.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 보니 정말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받은 이듬해 원주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세브란스병원 가까운 데로 이사를 왔습니다.

 

부부는 백두대간을 종주할 정도로 산을 좋아해서, 건강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임 씨의 아내 장창순 씨는 “남편이 IMF 이후로 사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욱하는 성격을 꾹꾹 누르며 살다가 결국 대동맥박리라는 사달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동맥박리 치료 후 임대성 씨는 최동훈 교수가 하라는 대로 철저하게 따랐다. 심장병에 안 좋은 음식과 습관은 모두 버렸고, 심장병 환자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운동 훈련을 주관하는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의 웰니스센터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했다.

 

 

대동맥박리로 죽을 고비를 넘긴 임 씨는 최동훈 교수의 말을 철저히 따랐다.

수술 후 3년 동안은 기름진 음식이나 고기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치열한 자기관리로

심장의 건강을 지킨 것이다. 

 

가족 같은 사이가 된 환자와 주치의

“최 교수님이 미국 연수 가실 때 남편은 아예 미국까지 따라갈 기세였어요. 그만큼 교수님을 의지했죠. 감사하게도 상담받고 싶은 내용은 모두 메일로 교수님에게 물어보고 답을 받고 그랬어요. 교수님이 귀국하시니까 남편 얼굴이 그렇게 밝아지더라고요.” 아내의 말에 남편 임 씨는 계면쩍은 듯 웃었다.

 

임 씨는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걱정 마세요. 정말 좋습니다. 90세까지 건강하실 겁니다.” 그때마다 최 교수는 긍정적이면서도 편안한 말로 딱 부러지게 남편을 안심시켰다. 아내는 그런 최 교수에게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정말 교수님께 감사해요. 교수님을 만난 지 벌써 16년째잖아요. 모든 일을 교수님한테 상담하다보니, 어느새 가족같이 되었어요.

장 씨의 말에 최 교수도 맞장구를 친다. “오래 만나면서 세세한 일을 다 알게 되니까 가족처럼 가까워졌지요. 누구나 말로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것은 잘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대성 환자는 하라는 것은 반드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 실천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에디터 이나경 | 포토그래퍼 최재인 | 스타일링 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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